백색시유 소비 다소 늘고 가공시유 상대적 줄 듯
간편식 유제품 시장 확대…숙성치즈 수요도 증가
수입시장 개방, 백색시유 고급화로 차별성 찾아야
내수 한계…수요도 높은 해외 시장으로 전환 필요
[농축유통신문 엄지은 기자]
지난해 유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전 산업계가 얼어붙었다. 특히 유가공업계는 우유소비시장의 큰 폭을 차지하던 학교급식이 중단되는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학교급식 소비량은 원유로 환산하면 약10만 톤 정도로, 190만 톤의 국산원유 유제품 시장의 5.3%나 되는 큰 물량인 만큼 유가공 업체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성수기인 4~9월 백색시유의 감소량은 0.8% 밖에 줄지 않았고, 하반기로 접어든 7~9월에는 오히려 소비는 약 1%가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불확실성에 빠진 유가공산업계는 국내 소비자들의 식습관 변화에 의한 소비의 감소, 출산율의 급감, FTA 체결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유제품 수입 등 위기로 점철된 상황 속에서 맞춤형 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가공업계는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변화된 소비패턴에 발맞추어 온라인을 통한 소비확대를 펼쳐나가고 있으며, FTA로 인해 그간 수입 장벽 역할을 해주었던 주요 유제품 관세가 없어지는 상황을 대비하는 등 국내 유가공산업 경쟁력 확보와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1970년대부터 유가공산업계에 몸담아온 이만재 한국낙농유가공기술원 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유가공산업의 현 모습을 짚어보며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19년 하반기부터 조금씩 살아나던 유제품 시장이 작년 1월부터 갑자기 창궐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여러 종류의 할인행사와 멸균유를 활용한 주문배달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탈출구를 모색해봤지만 급식 감소로 인한 타격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성수기인 4~9월 백색시유의 감소량은 0.8%에 지나지 않았고 하반기로 접어든 7~9월에는 오히려 소비는 약 1%가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0년 유가공업계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것이 불투명 하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유가공산업은 코로나19 사태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죠.”
이만재 한국낙농유가공기술원 원장은 2020년 유가공산업을 ‘중박’이였던 한 해라고 표현한다.
올 상반기 코로나19 탓에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우유의 주요 판로 가운데 하나인 급식 시장이 끊긴 상황에서 마트와 편의점 매출 증가가 급식 중단에 따른 매출 감소를 상쇄할 만큼 컸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이만재 원장은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단기적 요인뿐만 아니라 소비감소, 출산율 저하, FTA 체결 등 장기적인 요인들이 유가공산업 내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올 한해는 어쩌면 우리를 계속 괴롭혀온 매출감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유가공산업계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 변화에 대해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발효유·국산치즈, 유가공산업 ‘新성장동력’ 될 것
이 원장은 발효유 소비 증가에 따라, 간편식 형태의 발효유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발효유 시장 규모는 5,912억 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3% 성장한 것이다. 최근 소비가 급증한 간편식 형태의 결합상품인 비요뜨 같은 호상발효유 제품들의 소비 확대가 원인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재택근무와 ‘집콕’ 트렌드로 아침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간편하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간편식 아침식사’ 제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단백질, 칼슘, 유산균 등 영양소가 풍부한 요거트는 간편식으로 전망이 매우 밝다”며 “아침 대용식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요인 외에도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 물류·배송 서비스의 발달 등에 따라 당분간 성장세는 지속할 전망인 만큼 최근 아침 대용식으로 대표되는 그래놀라와 오트밀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유제품 간편식 개발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변화에도 주목하고 기능성 유제품 시장의 활황을 예측했다.
이 원장은 “코로나의 여파로 온 국민들에게 면역력 강화라는 의무적 욕구를 가중시켜 왔고 이를 계기로 여러 약품, 식품업계는 이 시장에 상응하는 신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유업체에서도 이미 이 시장을 노리고 면역강화 발효 유제품들을 개발 중에 있거나 출시를 준비하고 있으므로 2021년에는 이들 제품들이 앞 다투어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면역력을 강화해 주는 유단백질과 베타글루칸 등을 활용한 제품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코로나19로 무엇보다 건강, 면역력이 강조된 현 시점에서 이를 부각시키는 면역강화 신제품들은 줄을 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 신선한 원유를 사용한 생치즈의 확대는 수입유가 대부분을 차지하던 치즈시장의 구조를 개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치즈 소비량은 3.34㎏으로 전년보다 4% 증가했다. 2009~2019년 기준 연평균 증가율로 따지면 약 8%로 고속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 치즈 치즈자급률의 경우 2014년 4.4%를 정점으로 2019년 2.2%까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수입산 치즈가 관세가 철폐되고 무관세 물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저렴해지자 한국산 치즈가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이 원장은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국산 원유의 특징을 살린 생치즈 시장으로의 진출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 원장은 “신선도는 수입축산물을 이겨낼 강점이 된다. 특히 생치즈 특성 상 빠르게 소비해야 한다는 점이 있어 신선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산 원유가 가진 신선함을 강점으로 삼아 생치즈 시장을 확대해 국산제품의 비중을 늘려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유가공품, ‘우수성’으로 해외 소비처 확보 필요
이 원장은 내수 시장에 국한된 유업계의 마케팅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출산율 감소와 코로나19와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한 유제품 수입 증가, 원유가격연동제로 인한 원재료 상승 등은 국내 시유 소비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가격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돼서다.
유가공산업을 비롯한 관련 내수산업이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많은 수출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게 이원장의 진단이다.
이만재 원장은 “다양한 해외 마케팅 활동을 통해 한국 유제품의 해외 수출확대를 위한 노력과 투자가 일부 업체 사이에서는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 비약한 실정”이라며 “국내 식품 안전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또한 국내 유통의 콜드체인 시스템과 검수 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외국의 상류층들이 국내 축산물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데도 수출시장 진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양가가 높은 한국산 유가공품, 우유는 품질만으로 프리미엄 표식을 달 수 있을 정도다. 프리미엄 시장 진출은 국산 우유의 가장 큰 단점인 가격적인 측면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위해 유업체들이 품질, 위생, 안정성과 관련한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상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체에서의 클레임이 수출하고 있는 모든 업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이만재 원장은 유질에 따른 유대 차등지급, 원유검사의 공영화, 쿼터제도의 도입, 헬퍼제도 등 현재와 같은 원유가격 결정제도 아래에서는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른 어떤 대응도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낙농과 유가공 산업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연적이다. 낙농제도는 어느 나라든 우유의 생산기반을 보호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양질의 유제품을 저렴히 많이 먹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 위해서는 낙농가도 안심하고 우유 생산에 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낙농산업의 동반자인 유가공업체도 안정적인 이익을 가질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땅히 필요하다”며 “국제 유제품시장이 요동치고 수입 완전개방이 코앞에 있는 상황인 만큼 정부, 낙농가, 유업체, 소비자 등 낙농산업 관련자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원유가격 결정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